살고싶다는 농담 리뷰 - 망하려면 아직 멀었다

August 01, 2021 · 4 mins read

직관적이고 냉소적인 어조로 비관적인 느낌을 가득 담아 지적을 하며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던 그는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큰 병에 걸렸다. 그리고 그는, 이겨냈다.

이겨내고 나서 그는 그가 겪었던 고통을 감당해내고 있는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를, 생각을, 의지를, 느낌을 가득 담아 글을 펴냈다. 살고 싶다는 농담이다.

이 책을 가장 먼저 추천받은 건 오픈소스마케팅 방이다. ‘요즘 추천해주실만한 책 없나요’라는 질문에 첫 번째는 아니고 한 3~4번쯤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는 ‘제 동생이 읽었는데 추천하더라고요’라고 했고, 얼마 전 막연히 책을 사고 싶었던 나는 그걸 기억해내서 서점에서 산 뒤 책꽂이에 꽂아놓고 무려 세 달 넘겨 펼쳤다. 그리고 두 번 만에 다 읽었다.

제목에서부터 살고 싶다는 농담이라고 해서 역시 허지웅답다고 생각했다. 살고 싶다는 농담이라니, 세상 모순되는 단어의 조합 아닌가. 살고싶다는 말은 절박함에 터져 나오는 말이고 농담이란 그 깊이와 무게는 알 수 없으나 툭 던져지는, 그런 느낌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읽고 난 뒤 지금 이해하자면, 농도가 짙은 대화를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책에서 내내 허지웅은 살아라, 그러니까 버텨라, 나도 해냈으니 너도 할 수 있다, 삶은 원래 그런 거다, 그러니까 좀 더 성숙하게 이겨내보자 따위의 말을 한다.

보통 이런 말은 세상 누구나 떠들 수 있는 가볍기 짝이 없는 말인데 허지웅, 그러니까 그냥 허지웅이 아닌 혈액암을 이겨낸 혹은 이겨내려고 어울리지도 않는 요가에 우연히 등록해 끝까지 해내고 있는 허지웅이 하는 말이니, 더 무겁고 진심으로 와닿는 것이다.

이런 부류의 글은 사실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박정민의 ‘쓸만한 인간’이라는 글을 읽고 이따금씩, 그러니까 조금 힘들고 인생이 무료할 즈음에 꺼내 읽는다. 박정민의 글은 뭐랄까, 내가 힘들 때 똑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다른 환경에서 비슷한 이유로 힘든 친구가 한강에서 아무 말 없이 함께 맥주를 홀짝이며 위안해주는 느낌이라면 이 글은 나보다 성숙한 한 어른인간이 무용담이든, 경험담이든, 울면서 하는 슬픈 이야기든 다 꺼내면서 분위기를 쥐었다 풀었다 하면서 결국에는 응원해주는 느낌이다.

이 책에서 좋았던 부분 중 몇 가지는 그가 좋아하는 구절을 인용을 곳곳에 해놔서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그 인용구를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과 영화 비평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의 영화 해석 이야기를 들을 때였다. 그중 무릎을 ‘탁’ 칠 정도는 아니고 ‘아,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번쩍했던 부분은 이 부분이다.

‘대부분의 성공에는 운이 따른다, 반면 실패는 악운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실패는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내가 직면한 실패가 자연스러운 결과로서의 실패인지, 혹은 의도에 의한 음모와 배신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다. 중요한 건 다음이다. 나라는 인간의 형태는 눈앞의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순간 결정되는 것이다’ (150p)

사실 이 문단에서 말하고 싶은 건 잘못의 근원을 따지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보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악마가 당신을 망치기 위해 발명한 피해 의식을 경계(152p)’ 하고 그다음을 자유 의지로 결정하며 주체적으로 이겨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이 책을 관통하는 허지웅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 피해 의식에 빠져 우울의 나락으로 빠지지 말고,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버텨내라는 의지다.

그러나 이 인용구에서 유의할 점은 실패는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이다. 성공에는 환경이 따라줘야 하지만 실패는 나의 선택으로 이뤄진다는 말이다. 너무 뻔해서 하기 싫은 말이지만 선택은 중요하다. 선택은 나에게 성공은 불러오지 않을지언정 실패는 가져다준다. 비록 타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할지라도 나의 선택으로 벌어진 일이고 그 수습은 나의 선택으로 이뤄진다. 나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로 선택했으며 어떤 슬픔과 어려움이 올지라도 이겨내기로 선택한다. 그리고, 이 문구를 가슴의 새기기로 결정했다.

‘바람이 일어난다. 살아야겠다.’(189p)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라.

어디에서부터인가 다 꼬여버려서 아예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수습이 불가능할 것 같은 지나온 세월에서도, 도저히 비집고 나갈 수 없을 것 같이 사방이 막혀버린 현생에서도, 믿고 따라갈 동아줄이나 실금 같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앞길에서도,

기회는 온다. 정말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뜻밖에 구원의 손길이 내려오리니 부디 피해 의식에 사로잡히지 말고 부단히 스스로를 단련하기를 바란다.

‘망했는데,라고 생각하고 있을 오늘 밤의 아이들에게 도움을 청할 줄 아는 사람다운 사람의 모습으로 말해주고 싶다. 망하려면 아직 멀었다.’(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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